일상

 

마냥 행복한 신혼생활에 젖어있을 무렵, 갑작스레 찾아온 아기천사.

입덧이 정말 심했다. 냄새란 냄새는 죄다 싫었다. 음식 냄새, 화장실 냄새, 싱크대 냄새, 소파 냄새, 식탁 냄새, 비누 냄새.... 끔찍했다. 소화불량으로 제대로 먹지 못한 건 물론, 24시간 뱃멀미같은 울렁거림에 시달려야 했으며, 어지러움으로 내내 누워 침대에서만 생활했어야 했다. 그렇게 한 달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내 안에 생명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성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내년 4월에 태어날 콩알이를 애타게 기다렸지만, 우리의 정성이 부족했는지 두달도 못채워 그대로 떠나가버렸다. 

유산 진단을 받고, 수술은 3일 후로 미뤘다. 좀 더 기다렸다가 초음파를 한 번 더 확인한 후 수술을 하기로 했다. 그 사이 기적이 일어나기를 소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의 100% 유산이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점차 수긍하며, 나 또한 유산이 확실하다는 직감이 왔다. 유산 후에도 입덧은 여전히 지속됐고 부푼 가슴 통증은 더해졌다. 임신의 징후라는 게 유산 후에도 이어지다니... 정말 잔인했다. 이것들을 유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더군다나 죽은 아기세포를 뱃속에 3일이나 더 품고 있어야 한다는건 나를 향한 혹독한 정신적 학대였다. 더는 수술을 미룰 이유가 없어 이틀 후 병원의 차가운 수술대로 향했다.

수술한 지 삼 일째, 지금은 회복 중이다. 입덧은 언제 그랬냐 듯 멈춰있다. 출산경험은 없지만, 마치 출산한 것 마냥 이 더운 날, 수족이 시립고 저린다. 허리와 모든 관절이 삐거덕거리고 오래 움직이거나 서 있을 수 없을 정도, 몸무게는 5킬로 이상 빠져있다. 거울에 비친 내 몰골이 말이 아니다. 친정 가서 속히 몸조리하고 싶지만, 이런 초췌한 모습을 우리 엄마아빠한테 보여주고 싶지 않다.  

아이를 품은 한 달 간, 하루하루 아이와 함께할 미래를 그리며 살았는데, 그것이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허무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그러다보니 인생살이가 덜컥 무서워졌다. 내 삶에서 비중이 큰 게 무엇인지 점검해야 할 것 같다. 모든 것이 영속할 수 없다. 그리고 앞날은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무엇이든 내 인생의 전부가 될 때, 그리고 그것이 한순간에 사라졌을 때, 과연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직도 속이 상하고, 상처로만 남았지만... 다음 인생 여정을 위한 성장통을 겪은 것이다. 쉽지 않다. 지금 가진 공허함과 우울감을 잘 이겨내봐야겠다.

블로그 다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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